[베이비뉴스]"사랑하는 졸업반 아이들아!" 어린이집 졸업반 아이들을 위한 교사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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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03회 작성일 2023-02-25 09:47본문
[공동육아의 시선] 어린이집 졸업 앞둔 아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
2월 말 졸업식. 그리고 3월에는 초등학교로 진학을 앞둔 졸업반은, 네 살 첫 등원 때 내가 담임교사로 어린이집에 적응시켰던 아이들이다. 가정의 품을 벗어나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이들이 눈물 콧물 흘리던 모습을 기억한다. 당시 아직 아기 티를 벗지 않았던 아이들은 제각기 자신의 생긴 대로 어린이집에 적응하려 애썼다. 어떤 아이는 한 교사에만 의존해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갈 태세였고, 어떤 아이는 적응 기간 내내 교실 밖에만 있어 문을 계속 열어두어야만 했다.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제법 눈치를 보며 상황 파악을 하려는 아이, 친구가 하는 행동을 다 따라 하며 비교적 적응이 빠른 아이도 있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법과 속도대로 공동육아 터전의 품 안에 파고 들어와 여러 어른들에게 귀여움 받고, 걱정 끼치며, 응원과 잔소리를 들어왔다.
그렇게 적응시켰던 아이들을 몇 해간은 연령 통합으로 지내며 여러 교사들과 함께 돌보다가, 졸업반 담임으로 만나 다시 일 년을 보냈다. 아이들은 일곱 살의 세계에서 치열하고 즐겁게 살았다. 텃밭을 일구고 농작물을 심고 수확하며 자연의 흐름을 알아갔다. 나무를 타고 흙에서 구르며 자연에서 실컷 뛰어 놀았다. 무섭거나 부끄러워 시도하지 않았던 일들도 몸을 움직여 일단은 도전해 보았다.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나만의 작품을 만들며 성취감을 쌓아가기도 했다. 친구와 다투었다가 화해도 하고, 어른들의 도움을 받으며 서로 신뢰를 쌓았다. 나도 그런 아이들 곁에서 관찰하고 응원하고 북주며, 꽉 채운 일 년을 보냈다. 그렇게 우리들의 옹골찬 일곱 살의 시간이 지났다.
여덟 살이 되면 학교에 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제 아이들은 친구관계에서 의견 조율이 되고 타인에 대해서 수용이 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맥락을 이해하고 말귀를 알아듣는다. 손끝이 야물어져서 이제 뭔가를 제법 만들어 낼 수 있고, 일머리가 생겼다. 몸도 자라서 안 먹던 것도 먹어볼 마음이 생겼다. 못하던 것도 배워서 시도해 보고,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도 받아들인다. 그렇게 겁이 많고, 말귀도 트지 않았던 아이들이, 이렇게 다부지게 자라났다니. 크느라 애쓴 아이들의 자람이 눈에 보여 기특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만간 학교라는 공간에 아이들이 걸어 들어가는 장면을 상상하면 걱정과 불안이 머릿속 한편에서 줄줄이 떠오른다. 친구 사귀기 어려우면 어쩌지? 가만히 못 앉아 있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거 아니야? 한글도 떼지 못한 아이들이 학습을 따라가기 어려운 게 아닐까? 보육교사로 자긍심을 가지고 아이들의 자람에 뿌듯함을 가졌던 마음은 갑자기 흐려지고 괜스레 아이들에게 ‘너 학교는 갈 수 있겠니? 학교 가서도 그럴 거니?’라는 잔소리를 하게 된다. 곧 학교로 가는 아이들을 걱정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보았다.
해와달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의 작품. ⓒ남봉림
사랑하는 졸업반 아이들아.
네 살 때 만나 울고불고 말 안 통하던 너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제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해. 일곱 살 가을쯤 되니, 이제 ‘나 할 수 있어’라고 스스로 해보는 용기가 생겼고, ‘아, 친구의 기분이 이래서 그랬구나’라고 이해할 힘이 생겼지. 천방지축 어설펐던 너희들이 학교라는 넓은 세상으로 향해,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자랐구나. 그런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그런데 사실 요즘 너희들과 지내다 보면 이런저런 걱정이 절로 들기도 한단다. 이 정도면 학교에 가도 될까? 아직 자기밖에 모르네. 글자 쓰기를 좀 어려워하네. 숫자는 좀 아나? 그림도 좀 그릴 줄 알아야 한다는데. 아직 겁도 많고, 친구에게 자기 할 말을 할 줄 모르고, 듣는 시간에 자기 말만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걱정이 슬쩍 올라왔지.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어. 너희들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 괜찮아. 아직 더 놀아도, 더 싸워도 괜찮아. 더 틀리고, 더 실수해도 괜찮아. 너희들은 주변 어른들이 너희 편이라는 믿음, 스스로도 자신을 믿고 사랑하고, 다른 사람도 이해하는 법을 충분히 배워왔잖아. 지난 시간동안 터전에서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며 땅파고, 나무타고, 나들이 다니고, 밥 먹고 자면서 생명의 죽고 삶을 배웠고, 엄마 아빠 없이도 재밌게 지내고, 먼 길 두발로 걸어갈 수 있는 다부진 힘이 생겼잖아. 만약 내가 너희들이 학교 가서 글자 모르는 게 걱정되어 책상 앞에 붙들어 두었다면 그 시간을 얼마나 후회했을까?
아쉽고 미안해. 코로나 3년 동안 마스크 쓰고 살며 서로의 표정을 채 알지 못해 아쉬워. 마스크 뒤에 숨어 있었을 속상한 표정을 내가 모르고 지나갔다면 미안해. 더 안아주고 더 뽀뽀해주고 싶었는데 코로나 기간 충분히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고. 말로라도 더 사랑 표현을 많이 할 걸 잔소리를 더 많이 한 것 같아 미안하다.
너희들의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감을 응원한다. ‘너’라는 작은 사람이 우리 터전으로 와서. 네 인생에서 가장 어설프고도 사랑스러운 4년의 영유아기를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어. 때로는 모든 것이 다 좋지는 않을 거야. 내 맘대로 안되는 친구들과 공부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동안 터전 생활에서 많이 경험했잖아, 내 맘대로 안되는 것을 견디는 힘과 세상을 나대로 즐겁게 살아갈 방법을.
얼마 전 너희들이 보내준 편지를 읽으며, 내가 너희를 생긴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것처럼, 너희들 또한, 화 많고 목소리 크고 실수 많은 부족한 선생님인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 너무 너무 고마워. 너희들에게 받은 사랑으로 동생들이랑 더 다정하고 재미있게 지낼게.
때로 힘들어서 좀 기대어 응석 부리고 싶을 때 언제든지 터전으로 놀러 와. 그 자리에 선생님과 동생들이 우리가 함께 지내던 모습 그대로 기다리고 있을게. 많이 보고 싶을 거야. 더 큰 세상에서 재미있게 지내다가 우리 훌쩍 큰 모습으로 또 만나자. 사랑해 얘들아.
해와달어린이집 학부모들이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케이크. ⓒ남봉림
해와달어린이집 학부모들이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모습. ⓒ남봉림
덧붙여 아이들이 갈 학교에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간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을 여럿 보면서, 학교 선생님들의 노고에도 무한 감사합니다. 노파심의 몇 마디를 얹어 봅니다.
학교에서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을 수도 있어요. 쉬운 말로 해주세요. 새로운 공간인 학교의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놀랄 수 있어요. 아이들이 큰 공간에 위축되지 않도록 충분히 뛰어 놀 수 있는 시간도 주시면 좋겠어요.
무엇을 표현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아이도 있습니다. 기다려주신다면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될 거예요. 아이들이 자기 맘대로만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적응을 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일 수 있으니, 혼내기보다 조금 더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많은 아이를 한꺼번에 대하기 힘드시겠지만, 아이들 각자에게 한 걸음 다가가 주실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아이 한 아이에게 사랑스러운 시선을 보내주시면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교가 편안하고 행복한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 안에서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다양한 배움을 가지며 자신의 자람에 뿌듯하고, 스스로를 믿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즐겁고 신나게 지내다가 졸업하면 좋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사단법인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소속 해와달어린이집에서 14년째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고, 공동육아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남봉림 씨가 보내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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